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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

이순신 장군에 대한 숨겨진 비하인드 이야기

by 물결 941213 2022.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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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전쟁 영웅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양파껍질처럼 계속 놀라운 이야기가 많은 분입니다. 오늘은 이순신 장군의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이순신 장군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알면 알수록 이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 이순신 장군의 숨겨진 이야기 3가지

 

첫 번째 이야기

 

이순신 장군은 4형제 중 셋째였는데, 형제의 이름이 희신, 요신, 순신, 우신이었습니다. 돌림자 '신'을  빼면 중국의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임금들의 이름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순'은 중국의 요순 임금의 이름을 중 '순'임금의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충남 아산에 있는 현충사에 있어서 이순신 장군의 고향이 충남 아산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순신 장군은 한양의 건천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건천동은 지금의 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중구에 있는 명보극장 자리가 바로 이순신 장군 생가 자리입니다. 

 

그럼 충남 아산은 이순신 장군과 어떤 인연이 있을까요? 충남 아산은 바로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와 부인의 고향입니다. 옛날에는 처가 쪽에 인연을 맺고 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하네요. 

 

두 번째 이야기

 

이순신 장군은 무과 출신이 아니라 원래 문과를 준비하던 선비였습니다. 장인어른의 강력한 추천과 권유로 무과로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그래서, 장군 치고 글을 잘 쓰고 연설을 잘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어록에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 "병법에 이르기를 한 명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막을 수 있다." 등 명언을 남긴 이유가 다 글공부를 했던 선비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무장들은 말이나 글이 짧았는데, 이순신 장군은 달랐던 것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수군이 아니라 육군 출신입니다. 워낙 임진왜란 때 전과가 훌륭해 뼛속까지 수군일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육군에서 근무한 기간이 더 깁니다. 이순신 장군의 첫 근무지는 백두산 근처였고, 여진족과 싸우시던 분입니다. 전라좌수사가 되기 전까지 수군 경험은 딱 2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전에서 그렇게 성과가 좋았다는 것은 이순신 장군이 공부를 많이 하고, 전술 연구에 통달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육지 출신이라 뱃멀미도 많이 했을 텐데 말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출세가 좀 늦은 편이었는데, 그 이유는 성격이 너무 꼬장꼬장하고 강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많은 부조리와 부정이 있었는데,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이순신 장군은 남들이 하는 청탁이나 적당히 줄 서는 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변방으로만 돌면서 속칭 뺑이를 치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동네 형님이었던 류성룡이 영의정이 되면서 선조에게 끊임없이 이순신을 추천하는 바람에 동네 고을 현감 수준에서 갑자기 전라좌수사라는 장군급으로 발탁이 된 것입니다.  

 

 

 

2. 이순신 장군의 핵심 전술 

 

우리가 영화 명량해전을 너무 감명 깊게 봐서 이순신 장군의 전매특허는 아주 소수의  인력으로 뛰어난 전술을 사용해 대군을 이기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원래 이순신 장군의 전술이 아니었습니다. 명량해전은 이순신 장군 본인도 하늘이 도왔다고 할 정도로 행운이 작용했던 해전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핵심 전술은 정탐을 통해 적응 동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우세한 군세를 이용해 기습을 하여 치고 빠지는 전술이었습니다. 결국, 이기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전투에 임하는 전술의 대가였습니다. 

 

손자병법에 이기는 군대는 승리할 환경을 만들어 놓고 전쟁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순신 장군의 병법과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화 한산 용의 출현과 명량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끊임없이 정찰선을 돌리고, 간첩을 보내 적을 탐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당시 이순신 장군은 정보전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적군이 어디에 몇 척이 있는지 파악하고 전술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난중일기와 징비록을 보면, 전쟁 중에 이순신 장군의 긴장감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투에 임하게 되면 갑옷을 입은 채 배 위에서 잠을 자고, 배들은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게 닻을 반쯤 올린 상태로 전투준비를 하고 24시간을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달빛이 밝은 날에는, 적이 기습할 것을 염두해 그랬다고 하고, 실제로 적의 움직임이 보이자 즉시 군단을 움직이자 왜군들이 이순신 장군이 미리 침입을 대비하고 역습한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 도망치게 했다는 자료도 있는 것을 보면, 이순신 장군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장군들은 넓은 지역에서 대치해 목숨을 걸고 혈투를 벌이는 전투를 즐겼는데, 오히려 이순신 장군의 전술은 지금의 현대전을 닮아 있습니다. 혹자는 이순신 장군이 외계인,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네요. 

 

 

3. 이순신 장군의 소름 돋는 정신력 

 

명량해전이 있었던 1597년은 이순신 장군에게 정말 힘든 한 해였습니다.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고 고문까지 당해서 몸도 성치 않은데, 백의종군으로 다시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바다에서 왜군의 침입을 원천 봉쇄하여 조선을 지킨 영웅에게 포상은 고사하고, 모든 권력과 권한을 빼앗은 것도 억울한데 고문까지 하다니 저였다면 아마 억울해서 죽음을 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백의종군하여 전쟁에 참여하다니 정신력이 대단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순신 장군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오던 이순신 장군의 어머님이 배 위에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이순신 장군의 아들이 전쟁 중에 사망을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전투를 잘해서 영웅이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함으로 투옥되고, 고문을 당하고,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아들을 잃으면서 명량해전이라는 가장 위험했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어진 노량해전에서 승리하지만, 이순신 장군 본인도 목숨을 잃게 됩니다. 정말 소름이 돋지 않습니까? 보통 인간이 이런 상황에서 성과를 이룰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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