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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

선조가 이순신 장군을 그토록 싫어했던 진짜 이유

by 물결 941213 2022.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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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활동했을 때 임금이었던 선조가 조금은 이순신 장군을 믿고 이해해 주는 임금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선조는 정말 이순신 장군을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싫어했다기 보다는 이순신 장군의 명성이 커지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1. 선조는 이순신을 잘 모르고 등용했다. 

 

이순신을 원래 육지에서 장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류성룡의 간곡한 천거로 정 3품 전라좌수사에 임명됩니다. 하루아침에 장군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벌어진 임진왜란에서 1년 동안 엄청난 전과를 세우면서 전라, 충청, 경상을 아우르는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오릅니다. 직제로 보면 임금 밑에 영의정 류성룡이 있고, 그 밑에 전쟁 총책임자 권율 장순이 있었습니다. 이순신은 바로 그다음 넘버 4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전쟁영웅이면서 넘버4였던 이순신에 대해 선조는 잘 몰랐습니다. 그저 류성룡의 추천을 믿고 관직을 내렸기 때문에 전쟁 중에 이순신의 공이 높아질수록 그에 대한 걱정이 높아졌습니다.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면 오히려 진심으로 축하하고 믿어 주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순신을 추천했던 류성룡 입장에서는 어린 시절 이순신과 함께했고, 절친이었기 때문에 그의 용맹과 됨됨이를 잘 알고 있어서 임금에게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류성룡은 이순신이 지방 말단 관직일 때부터 요직에 천거를 했습니다. 선조가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파격 승진을 시킬 때 사간원이 엄청나게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지만, 선조는 류성룡에게 이순신이 서울 사람인지, 글은 잘 이해하는 사람인지 등을 물어보고 결정을 했다고 하니 선조도 이순신이라는 사람을 충분히 알고 관직을 내린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선조의 입장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내가 신뢰하는 사람의 추천으로 믿고 관직을 내렸는데, 이 친구가 적당히 잘하는 것이 아니라 초울트라급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모든 관심을 앗아가는 매력을 지녔다면 도리어 질투가 느껴졌을 법도 합니다. 

 

임금인 자신보다 백성들이 더 믿고 따르는데 정작 본인은 이순신의 품성이 어떻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특별한 인간관계도 맺지 못했다면 선조 입장에서는 이순신이 다른 마음을 품을지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2. 선조는 백성들을 이순신에게 뺏길까 걱정했다.  

 

임진왜란 중에 이순신의 위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은 육지에서의 연패와 달리 바다에서는 연전연승을 달리고 있었고, 실제로 이순신의 권력은 대단했습니다. 

 

광해군이 전쟁 중에도 장수를 뽑아야 하니 무과를 치르기 위해 군사를 거느리고 오라고 하자, 이순신은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거절하고, 본인이 자체적으로 무과를 실시하겠다고 합니다. 

 

당시 과거는 임감의 고유권한이라서 이러한 이순신의 태도는 자칫 임금 권력을 넘보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순신이 있는 삼도의 수군 병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용맹해지고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혹독한 실전훈련으로 다져진 최고의 정예병이었고, 전투를 통해 의리와 신뢰가 남달랐습니다. 

 

전쟁 중에는 백성들이 왜구의 약탈이 두려워 해변에 사는 것을 두려워했으나, 이순신이 다스리면서 해변에 백성들이 모여 살게 됩니다. 백성들은 병사와 백성 모두 똑같이 대해 주는 이순신을 믿고 그가 다스리는 곳에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순신 주변에 백성들이 모이고, 이순신은 백성들이 먹을 수 있도록 남해의 섬을 나누어주고, 둔전을 경작하고, 목축을 합니다. 조정에서 보면 이런 이순신이 정말 무서웠을 것입니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해상왕국처럼 본인의 영역을 키우고 있었으니 전쟁 중에 아무 역할도 못했던 선조 입장에서는 민심이 이순신에게 쏠릴까 노심초사했을 것입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모든 백성들이 이순신을 따른다면 임금이라고 별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보니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이순신을 몰아내기 위해 쌍심지를 켜게 된 것입니다. 

 

 

3. 선조는 원래 소심하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선조는 바로 수도 한양을 버리고 북쪽에 있는 의주로 도망갑니다. 백성들은 화가 나서 경복궁에 불을 지르고 노비문서를 불태웁니다. 덕분에 왜군은 20일 만에 한양에 입성합니다. 

 

도망친 선조는 전쟁을 지휘하는 것이 겁났던지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분조를 합니다. 분조는 조정을 반으로 나누어 광해군에게 절반의 권한을 주어 의병모집과 왜적과 싸우는 역할을 맡깁니다. 본인은 전황이 더 안 좋아지면 명나라로 도망칠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이순신 장군 덕분에 전황을 뒤엎고 대등한 수준까지 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해 전쟁이 끝나는 마당에도 이순신 장군은 퇴각하는 왜군과 싸우다가 노량해전에서 급기야 사망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망하게 된 이순신 장군에 대한 보고를 받은 선조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사료에 의하면 '알았다'라는 짧은 한마디 외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 명장의 사망에 대한 예우가 아닌 듯합니다만, 선조는 그만큼 이순신 장군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종식되고 선조는 이순신을 일등공신으로 책봉합니다. 아마도 전사를 했기 때문에 일등공신이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살아있었다면 또다시 어떤 모함을 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이렇게 전쟁 후 성과에 대해 포상을 하는데, 선조는 왜군과 맞서 싸운 장수들보다 자기를 모시고 피난을 떠난 신하들에게 더 많은 포상을 내립니다. 결국 자기를 보호해 준 사람들이 더 중요했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전쟁의 책임을 본인이 아닌 영의정 류성룡에게 덮어 씌워 파직을 시킵니다. 전쟁준비를 소홀하게 했다는 이유죠. 참 대단한 임금입니다. 

 

신하들과 장수들에게 포상을 하면서 정작 본인은 전쟁 중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는 것에 비난이 돌아올 것을 두려워해 선조는 모든 공을 명나라에게 돌리는 정책을 펼칩니다. 

 

조선은 한 일이 없고, 백성도 한 일이 없고, 관군도 한 일이 없었다. 나 역시 많이 부족했다. 오로지 아버지 명나라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논리를 확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 소중화사상이 크게 붐이 되었다고 합니다. 

 

선조라는 임금의 품성이 원래 이러한데 어떻게 이순신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대우를 해 줄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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