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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 역사란 무엇인가

by 물결 941213 202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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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대학교 새내기가 되면 필독 도서로 유명합니다. 간혹 어떤 교수님은 독후감 숙제로 많이 내기도 합니다. 작가는 영국의 정치인이자 역사가였는데, 60세가 넘어서 역사가로 활동했어요. 작가는 역사란 현실에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좋다는 주장을 많이 했습니다. 

 

 

 

1. 역사가 100% 사실이 아닌 이유 

 

저도 역시 어렸을 때부터 역사책을 좋아했는데, 그것이 바로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소설, 시, 수필과 같은 문학은 사실이 아닌 허구였기 때문에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작가는 역사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예전에 책을 읽었을 때도 이 부분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역사를 성장배경과 지식기반이 다른 역사가들이 작성한다고 해도, 저는 최대한 본인 이름을 걸고 철저한 고증을 거쳐 사실 그대로를 기록했을 것으로 믿었거든요.  

 

역사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역사는 역사가의 평가와 해석이 담긴 살아서 움직이는 이야기와 같다는 것이 작가의 역사관이었습니다. 

 

지금은 저도 이 말을 믿습니다. 역사책은 확실히 같은 사건에 대한 책을 읽어도 누가 작성했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약간씩 다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해석의 차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역사책을 다양하게 읽는 묘미죠. 

 

책에서 이야기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제 고정관념을 깨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콜럼버스에 대한 위인전기를 읽었기 때문에 그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선구자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사가 사실일까? 책에서 말하듯이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던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콜럼버스는 조용히 살고 있는 본인 세상에 불현듯 침입해 들어와 동족을 학살한 악당인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는 누구의 입장에서 써졌는지에 따라 그 관점과 해석이 완전히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모두 100%의 사실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19세기 유럽에서는 역사는 절대적으로 사실이라고 믿었습니다. 개인의 의견과 역사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런 사실주의 역사관은 19세기 유럽의 분위기를 말해주는 하나의 흐름이었고, 문서에 쓰이면 모두 사실로 믿어지기까지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20세기 초 유럽부터 역사는 사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고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기조가 생깁니다. 작가도 20세기 초 유럽의 학자 중 한 명입니다. 이렇게 관점이 바뀌게 된 이유를 살펴봅시다. 

 

결국, 역사도 사람이 쓰기 때문에 자기 주관이나 생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가가 책을 쓰는 시대의 가치관과 문화가 기록에 어떤 방식으로든지 포함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사용하는 단어에도 역사가의 취향이 담겼기 때문입니다. 단어와 표현에서 그 당시의 가치관과 문화를 반영됩니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면, 4.19 혁명이 처음에는 4.19 의거 혹은 4.19 학생운동이라고 불리다가 정권이 바뀌고 난 후에야 4.19 혁명으로 쓸 수 있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역사가는 결국 역사를 큐레이션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역사가 만들어지는 패턴을 보면, 수많은 역사적 사실이 사료화가 되어 저장이 되고, 시간이 흘러 다음 시대의 역사가는 과거의 사료 중에서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서 편집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 시대의 역사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역사가가 제조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절대 100% 사실이 될 수 없는 구조인 것이죠. 역사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낌이 오지 않나요? 

 

역사에는 역사가의 역할이 8할입니다. 과거를 그냥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한다는 의미에서 뉴스에서의 저널리스트와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역사가는 우리가 기억해야 하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지에 대해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역사가의 역할에 대해서 논란이 생기기도 합니다. 

 

역사가가 역사적 사실 인물에 대해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입니다.

 

역사가는 역사적 인물을 판단하기보다는 객관적으로 역사적 사실만 평가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히틀러가 나쁘다 좋다고 평가하거나, 연산군이 폭군이다 아니 다를 논하기 시작하면 실제로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평가를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역사는 현재를 바라보는 거울 

 

우리나라에서 독재정치에 대한 항거가 있었던 것처럼, 미얀마에서도 독재정치에 대한 시민운동이 있었습니다. 매우 닮은꼴이고, 이런 일은 다른 사회, 다른 나라에서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전쟁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만 부각되어 다른 곳에서는 전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러한 사건들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대가 아닌 다음 시대에 어떤 역사가는 분명히 지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역사적 사료에 대하 역사책을 쓰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시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이 먼 미래에는 역사가 된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가 보는 역사는 바로 지금 사회를 평가하고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역시 역사는 사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입니다.

 

그것이 작가의 관점에 따라 약간씩 뒤틀린다고 해도 다양한 역사가의 책을 읽음으로써 그 뒤틀린 정도를 바로잡을 수 있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저도 어떤 분의 책을 읽을 때 너무 편향적으로 쓰셨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 분은 이렇게 생각을 하셨나 보다' 정도로 이해하고 지나갑니다. 누군가는 또 반대편 입장에서 책을 썼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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