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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불교와 우파니샤드 비교하기

by 물결 941213 2023.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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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문, 철학 쪽에 관심이 생겨서 채사장의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와 시민의 교양, 열한 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을 수개월째 이어서 읽어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읽다가 너무 어렵고 길어서 중단했는데, 수년이 흘러 작은 지식들과 흥미가 쌓은 후 다시 읽으니 이제야 내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중 제가 관심이 높은 불교와 우파니샤드에 대한 부분을 기록해 놓고자 합니다. 나중에 제가 스스로 찾아보기 쉽도록 정리한 것인데, 필요하신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1. 지구를 양분한 거대 철학 : 구약과 베다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문서가 있다면, 그것은 구약과 베다라고 합니다. 

 

구약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 기반이 된 문서입니다. 반면, 베다는 고대 인도에서 기원했는데, 힌두교와 불교에 기반이 된 문서입니다. 

 

결국,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문서는 인간의 종교를 만들낸 것입니다. 사실 종교만큼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도 없으니, 그렇게 따지면 구약과 베다가 가장 중요한 문서가 맞는 듯합니다. 여기서 베다라는 문서가 좀 생소한데, 힌두교는 베다를 대중적으로 해석한 종교이고, 불교는 베다를 비판적으로 수용한 종교라고 합니다. 

 

구약은 신과 인간을 서로 분리하여 생각합니다. 신과 인간의 존재는 다르고, 그 역할도 다르다고 보는 것입니다. 신은 완벽한 존재이며,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 신을 숭배하고 순종하는 존재로 봅니다. 

 

베다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연속적으로 생각합니다. 신과 인간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대지에 흐르는 수많은 강이 바다로 이어서 하나의 바다에 합쳐지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대지에 있을 때는 수많은 강의 이름이 각자 있지만, 결국 바다로 하면 하나의 이름으로 통합된다는 것입니다. 

 

지구를 양분하고 있는 이 철학의 사조를 보면, 구약은 서양의 종교기반이 되었고, 베다는 동양의 종교기반이 된 것 같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로 구분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동양에 속하여 불교 혹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현대에 이르러 미국식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이분법적인 사고가 더 강한 느낌이 듭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인데, 서양의 기독교적 사고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당연하게 믿도록 한다고 합니다. 

 

신과 인간, 부자와 거지, 남자와 여자, 왕과 신하, 기업과 노동자 등 특정 기준에 의해 둘로 갈라놓고 한쪽이 우세종이고 다른 한쪽이 열등종이라는 무언의 인식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약간 비약이 심하게 생각되었지만, 딱히 틀린 표현도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2. 베다의 영향을 받은 우파니샤드와 불교 

 

우파니샤드는 베다 문서의 정수라고 불립니다. 우파니샤드란 의미는 '비밀스럽게 전수되는 지혜'라는 뜻입니다. 베다는 기원전 2500년 전에 아리아인들이 기록했고, 아리아인들의 신화, 종교, 철학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신비한 언어인 샨스크리트어로 기록되었다는데, 기원전 2500년 전의 철학이라니 믿기지 않습니다. 

 

현재가 2023년인데, 이 말은 기원후 2023년이라는 뜻이니, 기원전 2500년 전이라 함은 지금으로부터 약 4500년 전이라는 뜻인데, 그때 철학이라는 개념이 존재했었다는 뜻인데 쉽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우파니샤드는 베다가 형식주의로 흐르는 것을 비판하고, 베다의 내용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문서입니다. 한 권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우파니샤드는 다양하게 작성되었습니다.

 

우파니샤드의 지향점은 인간이 사제나 신에게 의존하는 기복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궁극의 지혜를 깨우쳐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 오래전 고대 인도에서도 행복을 찾는 방법이 있었나 봅니다. 누군가 신적인 존재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고 깨우쳐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지향했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베다의 철학을 전승한 우파니샤드의 이론이 익숙한 이유는 불교도 베다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업보), 윤회(환생), 해탈(영원한 자유)이 불교의 고유 사항이라기보다는 고대 인도의 베다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파니샤드와 불교는 세계관을 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불교와 우파니샤드 모두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업보를 만들어내고, 이 업보에 의해서 다시 윤회를 하게 되므로, 이번 생애에서 욕망을 내려놓고 깨달음을 얻게 되며, 당신은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고 해탈이라는 영원한 자유를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와 우파니샤드는 서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아'에 대한 개념입니다. 우파니샤드에서는 고정불변한 자아의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면, 그 존재는 연속적이고 불변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마치 기독교의 영혼 같은 존재인데, 영혼이 새로운 육체에 스며들어 다시 부활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자아를 '아트만'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업보를 타고나서 고통스럽게 윤회를 거듭하는 것은 맞지만, 고정불변의 자아는 없다고 말합니다. 붓다는 이것을 '무아'라고 주장했습니다. 영원한 자아와 영혼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이 생각해 낸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고정불변의 자아가 없다면 어떻게 전생의 업보를 타고 다시 환생할 수 있는가입니다. 붓다는 고정된 자아나 영혼이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내가 행했던 업에 의해 이어지는 정신적인 요소와 물질적인 요소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밧줄로 설명하고 있는데, 밧줄은 하나로 이어진 긴 끈이지만, 실제로는 짧은 실들이 서로 얽혀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태어난 존재는 그전에 소멸한 존재와 똑같지 않지만, 그 이전의 업보를 통해 재탄생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또 완전히 다르다고 보지 않는 것입니다. 존재라는 것을 영원히 변화하는 요소들의 연속체로 보는 것입니다. 

 

불교에 대한 글과 동영상을 보다 보면 '무상하다'란 말씀을 많이 합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는 불변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념인 듯합니다. 

 

 

 

3. 우파니샤드의 개념이 와닿는 이유 

 

저는 다양한 인생의 고민을 불교 관련된 책과 에세이, 동영상 등을 접하면서 해결해 왔습니다. 해결했다기보다 마음의 안정을 추구했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무상'과 '무아'였습니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덧없다는 것과 나라는 존재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티벳 사자의 서'라는 책을 알게 되었는데, 이 책도 인도에서 건너온 티벳 고승이 작성했는데, 죽은 이후 환생하기 까지의 과정을 기록하고 죽은 후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하는 방법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다 보면 우파니샤드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죽은 이후 자의식이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티벳 사자의 서는 불교의 사상보다 베다의 원류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고정 불변한 자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좀 더 베다의 사상을 이해하기 편했습니다. 분명히 내 몸과 정신과 의식을 느끼고 있는데 없다고 한들 금세 와닿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명상을 오래 하여 아주 조금이라도 깨달음을 얻었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일단, 우파니샤드의 개념처럼 인간과 신은 서로 연속된 관계라는 생각을 공유한다면, 사실 나는 삶과 죽음까지 포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삶과 죽음의 세상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내 인생이 육체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넘어 좀 더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세계까지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마치 내가 이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로서의 느낌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현실의 괴로움과 고통을 잠시 라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고, 발생하는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또 그 모든 것은 내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아직은 약하지만, 이 세상은 내 의식이 만들어낸 세상이고, 모든 사람은 다 각자만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 다른 해석,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결국 내 눈에 비친 세상에 대해 내 두뇌, 내 의식이 각자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다른 사람과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모든 행위는 무의미합니다.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살다가 그다음 생으로 이어질 뿐이고, 살아가는 와중에 공부를 하여 깨우침을 얻는다면 우리가 늘 바라는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뿐입니다.

 

행복이든, 자유든, 해탈이든, 열반이든 살면서 어떤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면 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죽기 전에 아주 아주 작은 깨달음이라도 느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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