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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

조선 왕 계보 - 태조 정종 태종 세종

by 물결 941213 202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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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를 공부할 때 제일먼저 암기하는 조선 왕 계보 중에 가장 중요한 4명의 임금입니다.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 그리고 세종대왕, 불행하게 중간다리 역할을 한 정종은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죠. 

 

오늘은 조선 왕 계보 중에서 가장 앞에 나열되어 있는 4명의 왕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이 방영 중인데 태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1. 태조 이성계 1335~1406년

 

태조 이성계는 71세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군요. 조선시대 남자 평균수명은 30~40세라는데 생각보다 장수를 하신 것 같습니다. 

 

재위기간은 1418~1450년으로 32년간 임금자리를 지켰습니다.

 

30년간 임금 역할을 했으니, 요즘 회사원들이 직장생활을 하는 기간과 비슷하네요. 여기저기 이직을 하더라도 최대 30년은 회사를 다녀야 어케 자녀교육을 마칠 수 있으니까요.

 

태조 이성계는 함경도 영흥 출생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분의 고향이 함경도니 이북사람이군요. 우리는 반드시 남북통일을 해야겠습니다. 우리나라 큰 줄기를 담당했던 조선의 태조가 북한출신이니 말입니다. 

 

사실 태조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가 고려시대 때 원나라에 투항을 해서 함경도 지방의 수령으로 통치하고 있다가 원나라 세력이 약해지자 고려에 충성을 맹세하고 공을 세원 고려에서 벼슬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태조 이성계의 집안은 약간 로열티면에서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끝까지 원나라에 저항한 공으로 고려의 공신이 되었다면 좀 더 모양새가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 보면 이성계가 라이벌인 최영 장군의 요동정벌 계획에 불가론을 내세워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고, 최영을 귀향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양대 무인이었던 이성계와 최영 중에서 한쪽이 무너졌으니 이성계가 고려말 주도권을 쥐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우왕, 창왕을 몰아내고 본인 입맛대로 공양왕을 왕으로 만들고 개혁을 추진했으니 말입니다. 

 

이성계는 일단 조선의 태조로서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어느 왕조나 말기에는 국가를 엉망으로 만들기 때문에 큰 개혁가가 나타나지 않는 한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는 것이 수순이니까요. 

 

하지만, 태조 이성계는 임금이 되었지만 한 가족의 아버지로서는 그리 행복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1차 왕자의 난, 2차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결국 태종 이방원이 왕권을 이어받는데 이성계는 몹시 화가 났을 것입니다. 

 

태종 이방원은 왕이 되면서 이성계의 옛동료들과 형제들을 모두 죽이면서 왕이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도성을 떠나 금강선 언저리를 떠돌다가 반란도 일으켰다가 실패해서 그 이후 한양에 돌아와 조용히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업적이라고 한다면, 고려말 세상을 혼란스럽게 했던 구세력을 싹 몰살시키고 숭유억불 정책이라는 큰 틀에서 국가의 전략을 만든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정종 이방과 1357~1419년

 

정종 이방과는 62세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군요. 환갑을 넘기셨으니 장수하신 편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왕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그리 멋지게 살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재위기간은 1398~1400년으로 2년간 임금자리를 지켰습니다.

 

겨우 2년간 임금자리를 유지했습니다. 국회의원도 4년을 해먹는데 한 나람의 임금자리에 올라 겨우 2년하고 내려왔다니 억울할 노릇입니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 보면, 종종 이방과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얼마나 역사고찰을 하여 드라마 각본을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정종 이방과는 동생 이방원을 아끼는 형이었는지, 동생을 두려워했던 형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차 왕자의 난이 있은 후에 승리를 한 태종 이방원은 본인이 바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충작용을 위해 이방과에게 왕을 맡깁니다. 

 

결국 정종 이방과는 본인의 힘으로 2대 왕이 된 것이 아니라 흉폭한 동생의 힘으로 왕이 된 것입니다. 결국 그 기간은 오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왕이 되고자 하는 이방원의 이글거리를 눈빛을 보고 어느정도 짐작은 했을 것입니다. 

 

결국, 2차 왕자의 난이 발생해서 바로 이방과는 동생 이방원에게 왕위를 넘기고 왕위에서 내려옵니다. 

 

제가 볼 때 권력면에서 볼 때 정종 이방과는 패배를 했을지 모르지만 인생면에서는 나쁘지 않습니다. 왕위를 오래하려고 버텼다면 바로 죽었을 테니까요. 조선시대 역사를 보면 권력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장수의 비결입니다. 

 

 

3. 태종 이방원 1367~1422년 

 

태종 이방원는 55세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군요. 생각보다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태종실록을 보면 이방원은 말년에 본인이 죽인 사람들의 망령에 시달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이고 왕권을 얻었으니 사이코가 아닌이상 마음이 편할리 없었을 것입니다. 

 

재위기간은 1400 ~ 1418년으로 18년간 임금자리를 지켰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좀 특이합니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고, 수많은 정적을 죽이면서 임금의 자리를 차지했는데 장기집권을 하지 못하고 생각보다 짧은 18년간 임금역할을 했다니 말입니다. 

 

태종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입니다. 

 

성균관에서 공부했고 명나라에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조선시대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군요. 지금으로 따지면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미국에 MBA를 다녀온 것과 비슷했겠네요. 

 

여튼 태종 이방원은 무식한 임금이 아니라 공부도 잘했고, 유학물도 먹은 학식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고려 충신 정몽주를 살해하여 조선을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워 본인이 왕을 물려받을 것으로 알았던 분이죠. 

 

그런데, 태조 이성계는 여덟번째 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합니다. 

 

본인에게 돌아올 왕위가 한참 동생인 이방석에게 돌아가자 분노한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등 태조의 가신들을 싹 죽여버립니다. 

 

태조의 세력을 없애버리고, 본인이 둘째 형인 이방과에게 왕위를 넘겨 2대왕 정조를 만들죠. 결국, 바로 2차 왕자의 난에서 넷째 형 이방간을 죽이고, 이방원 자신이 왕위에 오릅니다. 

 

결국, 태종 이방원은 왕위에 도전한 형과 동생을 모두 죽이고 왕이 된 인물이며, 그 과정에서 본인이 왕이 되는데 거추장스럽게 하는 사람들은 깔끔하게 죽입니다. 

 

결국, 태종의 가장 큰 업적은 중앙집권의 확립입니다. 

 

이런 임금 밑에서 신하들이 힘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국가 초기에 이렇게 강력한 왕은 국가의 기틀을 잡는데 도움이 됩니다. 의정부와 6조를 만들어 행정제도를 정비하고 신하들의 사병제도를 없앴습니다. 

 

지방군을 정비하고, 전국의 토지를 정비했고, 공신전에도 세금을 부과해 신하들을 압박했고, 호패법을 실시해 모든 백성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결국, 태종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향후에 잘 굴러갈 수 있도록 기반을 닦은 왕입니다. 

 

제가 태종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딱 하나 마음에 들었던 점이 있습니다. 바로 세자책봉과 은퇴시점입니다. 태종은 세자로 양녕대군을 책봉했다가 폐하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합니다. 

 

충녕대군은 바로 세종대왕인데, 세자로 책봉하고 2개월만에 상왕으로 물러나 세종에게 왕권을 줍니다. 그리고, 본인은 병권을 장악하고 세종이 정치에 익숙해질 동안 세종을 지켜줍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아시겠지만, 세자책봉 후 30년간 세자로 지낸 임금도 있습니다. 그만큼 임금자리를 내 놓기 싫은 것이죠. 최고의 권력이니까요. 하지만, 태종은 깔끔하게 2개월만에 물려줍니다. 쿨한 임금입니다.  

 

 

 

 

4. 세종 이도 1397~1450년

 

세종 이도는 53세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군요. 생각보다 장수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세종대왕처럼 훌륭한 성군은 한 100세까지 사셨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어디선가 본 짤이긴 하지만, 세종대왕이 하도 많은 업적과 선진적인 제도를 만들어서 외계인이었다는 이야기도 접한 적이 있습니다. 전세계 유일하게 인간이 창조한 문자 '한글'을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재위기간은 1418 ~ 1450년으로 32년간 임금자리를 지켰습니다.

 

약 30년간 임금 역할을 한 것은 전체 조선역사를 보면 나쁘지 않는 기간입니다. 뒤로 갈수록 하도 빨리 왕권이 바뀌어서 꾸준히 30년간 재위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세종 이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임금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왕이라는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집현전을 통해 학자를 양성하고, 인쇄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경자자, 갑인자, 병진자 등 활자를 개선했습니다. 학자를 양성하고 인쇄술을 발전시켰다면 그만큼 그 시대의 지식이 후대로 많이 전해질 수 있었을 테니까요. 

 

최대의 업적인 훈민정음을 창제했는데, 세종대왕의 실력을 볼 수 있는 점은 이 훈민정음에 대한 연구기록과 해설서까지 만들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인류역사상 훈민정음이 가장 큰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화포를 개량해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났고, 해시계와 물시계를 만들어 백성들이 과학적으로 생활패턴을 관리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칠정산내외편, 제가역상집 등을 편찬해 역법도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계산할 수 있게 했습니다.

 

농업측면에서는 측우기를 발명하고, 농사직설 등을 만들어 농법을 보급했고, 의약측면에서는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를 편찬해 아픈 백성들을 돌보았습니다. 

 

국방측면에서는 두만강과 압록강에 6진4군을 설치해 지금의 영토를 확립했고, 속육전을 만들어 법전도 정비를 마쳤습니다.  

 

결국, 세종대왕이 외계인이라는 소리는 이런 업적들을 보고 말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조선시대에도 외국에 의존했던 기술들에 대해 스스로 연구해 자립하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이 아무리 훌륭하다 한들 이 모든 업적을 혼자서 했을리 만무합니다. 결국 세종의 지도로 그 밑의 신하와 백성들이 이룬 업적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주 옛날부터 피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세종의 유일한 약점은 중국에 대한 외교면에서 취약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을 제외해도 워낙 업적이 탁월해서 단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 편입니다. 

 

지금 세종대왕이 한글로 된 노래가 전세계에 유행하고 있고, 한글로 된 드라마가 글로벌하게 인기를 얻게 된 것을 보면 얼마나 놀라실까요. 

 

그저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백성을 어여삐여겨 세종대왕이 끄적끄적 만든 글자였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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